간접고용의 형태에서 사용자 확정을 위한 판례법리 (상)
- [2021년 2월호 vol.0]
[월간노동법률] 박소민 노무법인 와이즈 대표공인노무사
1. 서설
최근 기업에서는 정규조직의 최소화와 핵심 업무의 집중화를 위한 전문성과 효율성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파견, 사내하도급, 소사장제 등 '간접고용'의 형태를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간접고용의 형태가 전사회적으로 일상화되고 복잡한 구조로 변화하면서 사용자를 확정하는 문제 또한 날로 그 곤혹스러움을 더해 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간접고용 사례에 있어, 그동안 법원은 묵시적 근로계약관계, 파견법상 불법파견의 효과, 부당노동행위에 있어 실질적 영향력설 등을 그 도구로 해 '진정한 사용자'를 탐색해 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즉, 판례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하거나 실질적 지배력설(영향력설)의 입장에서 '진정한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근로계약관계를 직접적으로 인정하는 방식, 파견법의 법리를 통해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의 책임을 사용사업주에게 지우는 방식 등으로 고용과 사용의 형식적 분리를 통해 사용자책임의 확대를 적용해 왔다.
이하에서는 종래 파견 및 사내하도급, 소사장제와 같은 간접고용의 형태에서 '진정한 사용자'의 탐구 수단으로 활용돼 오던 종래 판례법상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의 법리, 파견법상 불법파견에 관한 법리, 실질적 지배력설(영향력설)의 법리 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그러나 기존 법리들은 모두 '고용'과 '사용'을 분리한 이론으로서 '하나의 사용자'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기존 법리들은 새로운 간접고용 형태에 완벽히 부합돼 적용된다고 볼 수 없으며,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근로자를 직-간접적으로 사용하는 복수의 사용자 모두에게 노동법상의 사용자책임을 지울 수 있게 하는 공동책임의 법리가 개발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기존 법리의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하급심을 중심으로 '공동사업주'의 법리가 형성되고 있는 바, 본고에서는 이러한 법리에 대해서도 논의해보도록 한다.
2. 간접고용 관련 주요 판례법리 분석
가.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론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란 형식상 사업주인 수급인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도급인과 수급인 근로자 사이에 근로관계를 인정하기 위한 법리이다. 묵시적 근로계약관계 법리를 적용해 직접 근로계약관계의 성립을 인정한다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3면 관계인 사내하도급관계를 부정하고, 사내하도급 근로자와 도급회사 사이의 대면관계로서 직접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대법원은 현대미포조선 판결등에서 "원고용주에게 고용돼 제3자의 사업장에서 제3자의 업무에 종사하는 자를 제3자의 근로자라고 할 수 있으려면 원고용주는 사업주로서의 독자성이 없거나 독립성을 결해 제3자의 노무대행기관과 동일시 할 수 있는 등 그 존재가 형식적․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아니하고, 사실상 당해 피고용인은 제3자와 종속적인 관계에 있으며, 실질적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자도 제3자이고, 또 근로제공의 상대방도 제3자이어서 당해 피고용인과 제3자 간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돼 있다고 평가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라고 판시해 간접고용 형태에 있어 직접 근로관계에 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판례 법리에 따를 때, 도급인과 수급인 근로자 사이에 곧바로 근로관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원고용주인 수급인에게 사업주로서의 실체(독립성)가 없어야 하고, 또한 도급인과 수급인 근로자 사이에 지휘-명령 관계뿐만 아니라 근로계약의 기본적인 관계(임금지급과 근로제공)도 있어야 한다. 이 점은 사용종속성의 법리를 적용해 직접 근로관계를 인정한 경기화학공업 사건(대법원 2002. 11. 26. 선고 2002도649 판결) 및 인사이트코리아 사건(대법원 2003. 9. 23. 선고 2003두3420 판결)도 마찬가지이다. 두 판결에서는 특히 중간에 개재된 근로관계의 주체(소사장, 자회사 등 형식상 수급인)가 실체를 인정할 수 없다거나 형식상 존재에 불과하다는 점을 주된 근거로 들고 있다. 2008년의 현대미포조선 판결 역시 수급인의 사업주로서의 실체를 중요하게 보았지만, 앞의 두 판결(경기화학공업 사건, 인사아트코리아 사건)과 달리 '수급인의 실체 존재 여부(파견사업주로서의 독립성-실체성)'보다는 '근로관계(지휘-명령관계와 기본적 관계)의 존재 여부'에 상대적으로 보다 중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자만 묵시적 근로계약 법리는 외형상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두 당사자 사이에 직접적인 근로관계의 성립을 긍정할 수 있는 유용한 이론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요건이 매우 엄격하기 때문에 실무에서 인정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때, 엄격한 요건 심사의 핵심은 공급사업주(수급인)의 실체 존부, 즉 독립성 여부 판단인데, 공급사업주의 실체가 어느 정도로 존재하지 않아야 그 실체성이 부인되는가에 대한 일반론적인 판단이 없으므로, 공급사업주에게 약간의 독립성이 있으며 비록 하도급 근로자와 사용사업주 사이에 종속관계가 인정된다 할지라도 근로계약관계는 쉽게 부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나아가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인정되는 경우, 사용자 책임이 도급인에게로 전환돼 공급사업주는 노동법이 규정하고 있는 모든 사용자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즉,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는 제3자와 근로자의 근로계약 관계의 성립에 초점이 맞춰지므로, 공급사업주의 책임에 대해서는 방관하는 것이다. 그러나 법적 정의의 관점에서 실질적 사용자가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형식적 사용자에 대한 면책의 근거가 되는 것은 공평의 관념에서 부당할 수 있다. 공급사업주와의 근로계약관계가 부정되면서도 도급인과의 계약관계가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경우가 이론상 가능하기 때문에, 실제 임금지급 의무를 누가 부담할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저울질해보면 묵시적 근로계약관계 이론은 자칫 근로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
나. 파견법상 불법파견의 법리
파견법상 "근로자파견이란 파견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로자파견계약의 내용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파견법 제2조 제1호). 파견법에서 정하고 있는 근로자파견의 요건은 4가지로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ⅰ) 파견사업주와 근로자 사이에 고용관계가 존재하고 유지될 것, ⅱ) 파견사업주는 자신의 소속 근로자에게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할 것, ⅲ) 사용사업주와 파견사업주 사이에 근로자파견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이 존재할 것, ⅳ) 사용사업주는 파견계약에 따라 파견사업주의 근로자에게 지휘-명령할 것이 바로 그것이다. 즉, 파견사업주와 근로자 사이에 고용관계가 전제되고, 이와 별개로 지휘-명령의 근거가 되는 사용사업주와 파견사업주가 체결한 계약의 존재에 의해 근로자가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사건을 통해 제조업에서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부정하고 사실관계 측면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또한, 예스코 사건을 통해 구 파견법 제6조 제3항의 직접고용간주조항의 위법파견 적용 여부 및 직접고용간주조항에 따라 의제되는 무기(無期)근로관계의 성립 여부 등 불법파견의 사법적(私法的) 효과를 규명한 바 있다.
한편, 대법원은 2015. 2. 26.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건, KTX여승무원 사건 등 4개의 대법원 판례를 동시에 내 놓으면서 도급과 파견을 구분하는 기준을 명시적으로 제시했다. 위 사건들에서 대법원은 공통적으로 "원고용주가 어느 근로자로 하여금 제3자를 위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경우, 그 법률관계가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① 제3자가 당해 근로자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② 당해 근로자가 제3자 소속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속돼 직접 공동 작업을 하는 등 제3자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돼 있다고 볼 수 있는지, ③ 원고용주가 작업에 투입될 근로자의 선발이나, 근로자의 수, 교육 및 훈련, 작업-휴게시간, 휴가,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④ 계약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의 이행으로 확정되고, 당해 근로자가 맡은 업무가 제3자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구별되며, 그러한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는지, ⑤ 원고용주가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의 요소를 바탕으로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대법원이 정립한 판단기준 가운데 ①과 ②의 요소는 근로자파견임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징표인 반면, ③, ④, ⑤의 요소는 당해 계약이 도급계약임을 보여주는 징표에 해당한다. 즉, 대법원은 파견의 징표와 도급의 징표를 놓고 어느 징표가 실제 노무제공 및 근로관계에서 어느 정도 작용했는지에 대해 실질적-종합적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이 근로자파견의 판단기준으로 제시한 기준은 파견법상의 정의규정과 일정부분 괴리가 있으며, 실제 현장에서는'도급'과'파견'의 판단요소가 혼재돼 있는 경우가 많은데 법원이 단순히 일부 사실관계만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파견이라는 법형식을 강제하는 것은 문제라는 비판이 있다.
다. 부당노동행위에 있어 사용자 개념의 확대
개별적 노사관계에서의 사용자는 근로계약의 당사자로서 임금지급의무를 부담하는 등의 채무를 부담하기 때문에 원청회사에 대해 사용자책임을 물으려면 원칙적으로 근로계약관계의 존재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앞서 설명한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론 또는 파견법상 불법파견의 법리를 원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조법상의 사용자 개념은 노조법이 설정하고 있는 여러 제도(노조의 설립, 단체교섭, 단체협약의 효력, 부당노동행위 등)의 취지에 비추어 합목적적으로 해석돼야 할 것이고, 개별적 근로계약법의 틀 안에서 제한적으로 이해돼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건전한 노사관계의 형성을 목적으로 노조법에서 창설한 제도가 합리적으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이를 방해하는 행위를 방지하고 법상의 제재를 구하기 위해 '사용자'의 범위를 달리 획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조법상의 사용자 개념을 근기법 상의 사용자 개념과 달리 보는 경우,사용자의 개념 범위는 실질적 지배력 내지 영향력을 통해 판단돼야 한다는 것이 학설의 지배적인 견해이다. 즉,근로자와의 사이에 직접적인 고용계약관계가 없는 자라고 하더라도 노동관계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에는 '사용자'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집단적 노사관계에 있어서는 근로계약과 관계없이 근로자 집단의 취업조건에 대해 사실상의 근로자로서 영향력과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는 노조법상 사용자가 된다는 점에서 사용자의 개념은 확대(Erweiterung)돼 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대법원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사건에서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해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등으로 법 제81조 제4호 소정의 행위를 했다면, 그 시정을 명하는 구제명령을 이행해야 할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해 원청인 현대중공업을 부당노동행위의 주체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 판결은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부당노동행위에 관한 것이었는데, 단체교섭의 상대방에 대해 직접 판단하지는 않았지만, 소위 '실질적 지배력' 개념을 사용해 사용자 개념을 확대함으로써 원청업체를 부당노동행위 구제명령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더 나아가 하급심 결정은 단체교섭 응낙 가처분에 관해 "근로계약상 사용자 이외의 사업주도 사용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고 있는 근로자를 자기 업무에 종사시키고 기본적인 노동조건에 관해 사용자와 같이 볼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경우에는 그 한도 내에서 단체교섭의무가 있는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함으로써 단체교섭의 상대방인 사용자 범위를 확장했다.
이러한 하급심 결정에 대해 대법원 판례의 입장이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있어 사용자 개념의 확대를 인정하고 있지만, 단체교섭에 관한 명시적인 판단은 없었으므로 단체교섭의 상대방을 인정하는 데 있어서는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비록 단체교섭 및 협약관련 제도와 부당노동행위제도가 같은 노조법상에 놓여 있는 중요한 제도임은 사실이지만, 양 제도는 그 성격을 상당히 달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하급심 법리에 따라 원청업체가 단체교섭의 상대방으로 인정된다 하더라도 하청근로자와의 근로계약이 전제되지 않은 관계로 실무상 단체교섭의 대상 범위를 획정함에 있어 매우 어려운 문제에 당면할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지배력 내지 영향력 관계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업무도급관계의 실질이 의문시되는 경우로서 도급인 사업주와 수급인 소속 근로자 사이에 '파견관계' 또는 '묵시적 근로관계'가 성립돼야 할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집단적 노사분야에서의 지배력 범위를 너무 협소하게 판단해 도급인이 실질적으로 노조법상의 사용자의 책임을 부담하는 경우가 거의 없게 될 것이다. 즉, 이 견해에 의하면 파견법상 파견관계가 전제되지 않은 하도급 관계에서는 적어도 도급인과 수급인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이 성립돼야 한다는 것인데, 묵시적 근로관계의 법리는 법인격부인의 법리에 가까운 입장을 취하고 있어 수급인이 독립한 법인격으로서의 최소한의 실체라도 갖춘 경우에는 도급인과 수급인 근로자 사이의 근로계약관계를 거의 인정할 여지가 없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현재 판례 및 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지배력설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데에서 발생한다. 부당노동행위 금지규정의 사용자는 근로계약상의 고용주와는 다른 독자적인 개념이라고는 하나, 기본형은 고용주이어야 하는데 종래 지배력설에서는 이러한 점이 명확히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동설에서 말하는 사용자의 정의는 그 기본형을 갖지 못하고 탄력적 개념이 될 수 있다. 그 결과 부당노동행위의 사용자와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의 개념이 일치하지 않는 모순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 판례가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을 기본적으로 '지배력설'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있다 하더라도 단체교섭에 있어서의 사용자 개념은 '근로계약관계 또는 이와 인접하거나 유사한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노사관계의 당사자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때 '유사한 관계'란 "근로자의 기본적인 근로조건에 대해서 고용주와 부분적으로라도 동일시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지배력을 가진 관계"라고 해석한다. 향후 대법원 판결에서는 이러한 점이 명확하게 규명될 필요가 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