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5인 미만 사업장 청년인턴 채용확대' 방침에 노동계 반발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 취업이 어려운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5인 미만 사업장도 청년인턴을 고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겠다고 밝힌 데 대해 후폭풍이 거세다. 노동권 보호 차원에서 유지해 온 규제를 노동부 스스로 허물겠다는 얘기다.
노동계는 고용 확대라는 명분에 치우쳐 5인 미만 사업장의 열악한 노동실태를 외면한 처사라고 반발했다.
방 장관은 지난 20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겸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청년인턴제는 인력을 공급하는 사업이라기보다는 취업이 어려운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기회를 주자는 취지”라며 “벤처나 지식사업 등의 경우에는 근로자 5인 미만의 작은 기업이라도 일을 배우고 정규직으로 전환될 여지가 있으므로 특성에 따라 규제를 풀 예정”이라고 밝혔다.
방 장관의 발언 뒤 노동부는 발 빠른 행보에 나섰다. 노동부 관계자는 23일 “현행 노동관계법상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청년인턴을 고용하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그동안 정부는 청년들이 근로조건이 취약한 5인 미만 사업장보다는 여건이 나은 중견기업에서 근무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유도해 왔다”며 “이러한 기조에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근로여건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벤처나 지식사업 분야에서 청년들이 기업체험의 기회를 갖도록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다단계 하도급에 멍든 벤처·지식산업 노동자
문제는 청년들이 이미 진출해 있는 벤처·지식사업 분야의 근로조건이 형편없다는 점이다. IT서비스업계가 대표적이다. ‘대기업-하청-재하청’으로 이뤄진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인해 밑바닥에서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정치권과 학계, 관련업계의 증언을 통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김주일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산업경영학부)는 “대기업 소프트웨어 업체가 1억원에 프로젝트를 발주하면 을이 8천만원, 병이 6천만원, 정은 4천만원으로 단가가 깎이는 구조”라며 “마지막 실행단계에서는 1억원의 프로젝트가 4천만원에 맞춰지고, 해당 하청업체에 속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린다”고 설명했다. 제조업에 따라다니는 '3D 업종' 꼬리표가 새로운 업종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관련업체들을 대상으로 제재에 나섰을 정도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비롯되는 부당한 단가인하와 대금 지연지급 같은 불공정 하도급 행위가 도를 넘어섰다는 뜻이다.
IT서비스업계 노동자들의 건강에도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다. 김현주 서울근로자건강센터 부센터장이 지난해 10월 정보통신업종 노동자 629명을 온라인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7.8%가 "지난 1개월간 하루 10시간 이상 일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야간시간대인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에 일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도 63.9%나 됐다. 일반사무직에게 같은 질문을 했을 때 각각 63.3%·11.3%의 응답이 나온 것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 같은 근무형태는 최근 1년간 해당 노동자들에게 전신피로(90.4%)·근육통(82.4%)·요통(77.5%)·두통(77.3%)·복통(59.4%)·불면증(55.0%)·우울 또는 불안장애(53.7%)·심혈관질환(10.2%)의 고통을 안겨 줬다.
"임금착취 전제된 청년인턴, 고용유인책으로 부적절"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실을 그대로 둔 채 5인 미만 업체에 청년인턴 투입을 허용하겠다는 노동부 계획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IT서비스업계 종사자 근로실태 조사를 벌여 온 이문호 워크인연구소 소장은 “IT업계는 근로자 간 직무능력의 격차가 크고 근로조건 양극화가 매우 심각하다”며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젊은이들을 다단계 하도급의 말단인 영세업체에 투입할 경우 업체 간 제 살 깎아 먹기 식 경쟁이 심화하고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노동계도 정부의 계획에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김형동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현실적으로 영세업체에서 숙련을 쌓아 좀 더 좋은 직장으로 옮겨 갈 수 있는 직업은 변호사 같은 일부 전문직종에 한정돼 있다”며 “정책적으로 봐도 청년노동자에 대한 임금착취를 전제로 한 인턴제도 확대가 과연 청년고용을 확대하는 유인책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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